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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일지/메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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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고기 성립과정.pdf http://cafe.daum.net/alhc/51qB/682 돌아다니다가 보았다. 과연. … 이제는 교과서에도 좀 실려야 할 것 같다. '가짜 역사와 그 책이란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란 명목으로 말이지. ※ '환단고기 내용의 변화 완.pdf'란 파일은 카페에서. 그건 그렇고 최근은 개천절을 보내면서 좀 그렇더라. 내 조상도 그렇고(초창기 기원 까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그렇고,나라는 종자는 삼한이나 진(?)의 후손에 가까울 텐데,그렇다면 고조선의 단군이란 존재는 그닥 관련이 없는 거 아닌가? 고려-조선 유학자들이 단군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그들의 사대성 뿐만 아니라실제로도 먼 옛날의 북방 왕조와는 딱히 접점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지 싶다.
크리스천 ~ 크리스천 요가라는 게 있다고 한다.흠… 첨 들어봤다. 요가면 요가지 크리스천 요가라니… 아무튼 흥미를 돋운 기사의 논조에는 대체로 공감하지만, 결론에는 반만 동의한다.왜? 이런 건 대체로 개인&집단의 내적 역량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요가니 어쩌니 해도 이쪽이 단단한 기반을 가지고 있다면,포섭하고, 해석하며, 소화 및 흡수를 할 수 있게 된다. … 크리스천 락, 크리스천 힙합, 크리스천…(등등) 아마도 몇 년 지나면 이·삼단 찾던 말들은 쏙 들어가고 포장하기 바쁠 듯 싶은데? 물론 한국 주류 교단은 내적으로 빈곤하고, 황량하며,아는 지 모르는지 하여간 헛소리만 쓸모 없이 늘어놓으니 무리겠고,[베드로 어디갔냐?] 저으기 외국에서 뽑아낸 단물이나 공수해오리라는 생각이 든다. 덧.예수는 말하기를, 죄는 저런데..
내면의 빛에 대한 어떤 사람들의 경향 어떤 사람들은 외부의 신(성)에 대해서는 이러저러하게 구분하고 이름을 붙이고 또 수긍하지만, 속의 빛 또는 내부의 신(성)에 대해서는 '성품' 비슷한 한 가지 형태로만 퉁치려는 경향이 있다. 가령 바깥에서 찾아볼 때는, 유일신 · 일신 · 다신 · 범신 … 등등 입맛에 맞게(?) 열심히 구분하다가도, 안에서 찾을 때는 온갖 것이 수그러지는 형태로, 'X성' 같이, 단일하게 말하려 할 뿐이다. 고민하고 생각해보면 이쪽 역시 여러 형태로 갈라질 텐데 말이다. 살짝이 생각해 봐도, • 처음 부터 내재하는 빛.• 내재하였었지만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게 되는 빛.• 처음에는 없었는데, 외부적인 요인으로 얻게 되는 빛.• 개념뿐이라서 실체는 없고 단순히 미래적 가능성으로서의 빛.• 가능성을 담지하는 그릇으로써의 빛...
시천주(侍天主)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성을 말할 때, 그 정점(한계)는… 시천주(侍天主)다. ['시천주'라는 용어는 수운이 제시한 바지만, 내 생각이 그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튼 내가 보는 시천주는 다음 말씀에 의지한다.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구원의 계승 장막(베일)에 대해서 생각해보다가… 구약을 있는 그대로. (혹자들이 주장하는 대로)성경 그대로 받아들인다면,그건 분명하게 유대인들만의 것이다. 역사가들과 예언자들이 그렇게 주장하였고, 또 그렇게 전승하였으므로. 베드로의 이방인에 대한 견해는 전통에 충실했던 것이다.심지어 예수에게도 베드로와 같은 의혹이 존재한다.(실재로도 그랬다면, 베드로는 스승의 말에도 충실한 것이다!). 성경을 봐도 마르코복음과 요한복음의 간극은 상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그들이 전하였던, 구원에 대한 계승을 어떻게 하냐는 교회마다 차이가 있다. 유대인들에게만 구원이 있다율법을 지키는 이들(유대인)에 대한 구원을 주장하는 것이다. 누구는 율법은 공로 빼애액! 하며, 반대하고 싶어 애쓰는 것 같지만,걔들이 그렇게 약속하고, 하나님..
구원론=윤리론이란 발상 교회에서 주장하는 전통적인 구도란 '은혜(믿음)-행위(정성)'의 이원 구도이고,이는 '신본-인본'이라는 이원론적인 관점으로 부터 도출된다고 볼 수 있다. 나열한다면 다음과 같다. 신본 - 하나님의 은혜 ← 믿음.인본 - 사람의 행위 ← 정성. 그리고 이 구도를 생각해 본다면, 이는 다음과 같이 만들어 진다. 존재론 → 윤리론[근데 이러한 형태를 어딘가에도 본 적이 있다? 음, 아마도… 성리학?] 즉, 전통적인 교회[일부 개신교회]의 구원론 이란 '존재론으로 부터 유추(유비)되는 형태를 취하는 윤리론'이라고 볼 수 있겠고,여기에 의거한 성경 해석을 이름한다면, '윤리적인 해석'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저들 교회의 교조주의적인 면모는 성리학의 교조주의와 맥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우리가 구..
몇 가지. 오늘은 알코올이 들어간 관계로 다시 구성. 먼저 구분 및 분리할 필요가 있는 것들이 있다.중생과 칭의에 대한 구분(및 분리).아래 두 항목에 영향을 받는다.복음서와 바울 서신서에 대한 구분 및 분리.바울계 서신서와 나머지 서신서에 대한 구분 및 분리. 나는 대체로 이런식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여러 책에서 특정 구절의 인용이 마구잡이로 뽑혀져 사용되는 것에 불만이 많으며, 정통이든 사이비든 그런 식의 구성 자체를 싫어한다.[사이비는 정통이란 자들의 방법론을 차용할 뿐이므로, 그 특성이 어디 가겠느냐마는.] 그래서 이 부분에 있어서는, 그럴싸하게 막 가져다 쓰지 못함이 심히 안따깝다. 나로서는 어찌되었든 나중을 기약해 볼 수 밖에. 첫 번째. 국내 개신교 일부(이하 개신교)에 있어서 가장 큰 폐습을 꼽자면, ..
확신의 확산 나는 그… '확정적 확신'이란 것이 꽤나 '감정적인 판단'이라고 가정해 보았다. 확신이라고는 하지만 당사자 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도 이를 제대로 보증할 수는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는 것이고, 사람이라면 일단은(?) 죽어봐야 알게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신을 가진다는 것은 결국 이렇게 저렇게 따지기 보다는 어느 정도는 즉흥적인 면(하나님의 은혜 vs 김칫국 마시기)에서 가능했으리라 가늠해본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머리에서 굴려보고 있는데 문득, 그렇다면 이러한 감정(적인 확신)도 확산시킬 수 있을까? ,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곧이어 '부흥회'가 떠올랐다. 확정적 확신과 부흥회는 꽤나 어울리는 조합이다. 아마도 저런 스타일의 신앙관을 가지면서 신자들을 훈육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개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