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막(베일)에 대해서 생각해보다가…
구약을 있는 그대로. (혹자들이 주장하는 대로)성경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건 분명하게 유대인들만의 것이다. 역사가들과 예언자들이 그렇게 주장하였고, 또 그렇게 전승하였으므로.
베드로의 이방인에 대한 견해는 전통에 충실했던 것이다.
심지어 예수에게도 베드로와 같은 의혹이 존재한다.(실재로도 그랬다면, 베드로는 스승의 말에도 충실한 것이다!).
성경을 봐도 마르코복음과 요한복음의 간극은 상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그들이 전하였던, 구원에 대한 계승을 어떻게 하냐는 교회마다 차이가 있다.
유대인들에게만 구원이 있다
율법을 지키는 이들(유대인)에 대한 구원을 주장하는 것이다.
누구는 율법은 공로 빼애액! 하며, 반대하고 싶어 애쓰는 것 같지만,
걔들이 그렇게 약속하고, 하나님이 그랬다는 데,
뭐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근데,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주장할 것 같지는 않다.
선택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만 구원이 있다
(예전에는 별 생각 없이 "그러네"하고 동의하였지만, 지금은 의심스럽다.)
이건 위 첫 번째 문단의 '유대인'을 '그리스도인'으로서 단순하게 대치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데,
율법-유대인을 믿음-그리스도인으로 치환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성경을 읽을 때, 마치 있는 그대로 보는 듯한 인상을 받을 수가 있다.
그 방향만 적당히 바꿔주면 착착 맞아떨어지니까.
물론 이는 사실과는 전혀 다르다.
있는 그대로라면 당연히 유대인이어야지 그리스도인일리가 있나?
요즘은 사이비들이 저기의 '그리스도인'을 자신들 즉, '사이비'로 치환하는 방법이 유행이다.
다〜 배운대로 써먹는 거다.
그러니 정통 운운하며 앓는 소리 좀 그만 했으면 싶다.
율법을 지키는 선택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만 구원이 있다
두 번째가 첫 번째 문단을 대치하여 계승했다면, 이 쪽은 확장한 것에 속한다.
이 건 번잡하다. 불필요한 부분을 덧댄 것에 지나지 않는데,
성경, 특히 바울의 경향이 짙을 수록, 율법의 영향(범위)를 제거하거나 대폭 줄이는 경향을 가지는데,
[나중에 가서는 다른 사도들도 여기에 동의하는 바다.]
이들은 반대로 복잡함을 불리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장점이 있다면, 이 역시 두 번째 문단 처럼, 구약과의 연계시 잘 맞아떨어지는 느낌을 줄 수가 있다.
율법을 지켜야한다니! 완전히 같은 방법론과 인간상이 아니냐?
이들에게 예수란 존재는 지켜야할 것의 가짓 수를 줄여준 고마운 분일 것이다. ㅎ
그리스도인들에게(만) 구원이 있다
별다른 조건이 없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원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기에도 구분이 있다. 교회 안 만인가? 교회 밖 까지인가?
"별다른 조건이 없이"라고 적긴 하였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논의가 따라붙는다.
단순한 사항은 아니다.
아, 그리고 교회 안팎을 논할 때는 종종, '그리스도교인'과 '그리스도인'의 대비가 이루어지지만,
애초에 저게 분리가 되는지는 좀 의문.[과거의 나?ㅋㅋ]
'-교-'라는 건 공동체를 이름하는 것으로, 그 위상이 격하될 이유는 없다.
하자가 있더라도, 걍 그리스도교인이 그리스도인일 뿐.
유대인과 이방인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대비시킨다.
그리고 그리스도교는 이방인들을 주축으로 삼으면서, 유대인의 전통을 계승하였다.
이렇게 그리스도교는 이방인과 유대인이 잘 버무려진 것(?) 같으나
실제론 성경 속 유대인을 그리스도인으로 바꿔치기한 것 같은 인상만이 짙게 남겨져 있을 뿐이다.
그리고 뭔가 이상하다.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