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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일지/메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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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국어의 ㅖ 현대국어에서 ㅖ 는 /je/라고 발음 된다. 하지만 예전에는 단모음이 아니므로 /jʌj 또는, jɤj/로 발음되었으리라 보지만(일반적으로 말해지는 건 /jəj/, /ɤ/에 대한 건은 여기를 참고), 당대 역관들의 책을 보면 일본어의 え를 표기하기 위해서 /예/를 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렇게 바라보면 기분상인지는 몰라도, ㅖ/jʌj/는 뭔가 좀 지겹게 느껴진다. 그러니까 'ㅣ-ㅓ-ㅣ'가 빠르게 발음된다는 건데, ㅓ 앞뒤로 ㅣ가 배치되면서 뭔가 늘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실은 빠르게 발음되는 와중에 앞부분에서 전설로 단모음화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것은 아래와 같이, 마치 현대한국어에서 단모음이 탄생하는 방식 처럼 전설모음화된다는 것이다. ㅖ: /jʌj 또는, jɤj/ → /ɛj 또는, ej/..
수운의 신령과 기화 2020-01-01: 일부 바뀐 점은 여기에서 확인. 전에도 비슷한 내용의 글을 썼는데, 이번에는 약간 다른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수운은 다음과 같이 용어를 변용한 것 같다. 강신(降神) → 강령(降靈) 접신(接神) → 접령(接靈) 이를 중심으로 좀 더 생각을 진행하자면, 수운의 용어는 다음과 같은 짝을 가지게 되는 것 처럼 보인다. 수운의 용어 일반 단어 변형 낱자 연관 단어 신령(神靈) 신명(神明) 靈 ← 明 허령(虛靈) 기화(氣化) 기운(氣運) 化 ← 運 조화(造化, 無爲而化) 강령(降靈) 강신(降神) 靈 ← 明 허령(虛靈) 접령(接靈) 접신(接神) 靈 ← 明 허령(虛靈) 천령(天靈) 천신(天神) 靈 ← 神 허령(虛靈, 天主) 즉, 수운은 일반적인 단어의 뒷부분을 약간씩 변형하는 식으로 자신의 용어..
어떤 한자어들: 깨닫다, 기운 깨닫다 '깨닫다'라는 말이 있다. 명사로 쓴다면 깨달음이라고 한다. 깨닫다의 옛어형은 ᄭᆡᄃᆞᆮ다 이고, 그 변화의 과정을 구성한다면 다음과 같다. 깨닫다 < ᄭᆡᄃᆞᆮ다 ← ᄭᆡ-+ᄃᆞᆮ- ᄭᆡ다: (잠 따위를)깨다. ᄃᆞᆮ다: 달리다. 그렇다면 깨닫다 라는 건 '깨어 달리다'라는 뜻인가? 깨어 달린다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어떤 고차원적인 표현일까? 나 처럼 뛰어다녔던 사람이 만든 건가? 그런데 나는 실상을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니까 실은 저 것 자체는 별 뜻이 없으며, 어떤 한자어를 음차한 것일 뿐이다. 무엇을? 나는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해탈(解脫, मोक्ष, mokṣa) ├ 解: /kˠɛ/ 또는, /kai/ → ᄭᆡ/skɒj/(?) └ 脫: /duɑt̚/ 또는, /tʰuɑt̚/ → ᄃᆞᆮ/..
넋을 위한 달리기 달리기는 참 좋은 운동이다. 음… 나는 달리기를 잘 하지 못한다. 자세도 엉성하고 속도도 많이 느리다. 다만, 걷기와 함께 병행하면 좀 더 얻을 수 있는 바가 달라진다는 점에 착안하여 달려볼 뿐은데, 지속적인 달리기를 수행하여 퍼질 때까지 움직이다 보면, 다리가 풀려가고, 호흡이 가빠지며, 정신이 날아갈 것 같은 와중에도 끊임 없이 주변[환경]을 인식하려는 내가[앎이] 있음을 알아챌 수가 있다. 즉, 억지로 의식하지 않아도 지속적으로 주위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판별된 정보들을 수용하고 또, 인식하려는 내가 있음을 알 수가 있는데, 나는 여기에 넋 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실은 신체적으로 그저 뇌의 한 요소로써 작동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이 역시 피조물이라는 점에서 일어나고 사그라지는 것으로 그 ..
그리스도교의 숨길(도설) (불순한 형식의) 그리스도교의 숨길이다(아무래도 완전한 마무리 자체는 불가능하고;; 때때로 수정될 것). 순수한 그리스도교만의 것이 아닌, 갖은 양념을 곁들인 불순한 형식의 도설. 본문에는 넣으면 유익한 글이 아니라 도설에 보충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것만 넣었다. ※ 동학 주문(하느님을 위하는 글)을 최대한 어울리겠다는 방향으로 붙여넣었지만, 솔직히 많이 억지스러움;; [원뜻으로 넣은 것도 아님.] 지금 까지의 것들을 하나로 모으면서, 이것저것에서 끌어다가 붙여보았다. 단, 제대로 맞게 붙었는지는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것. 넋숨(유도초월압) - ᄆᆞᅀᆞᆷ(소곰) - 몸[몸나희] 숨길에 대해서 순수하게 숨길 자체는 말 그대로 숨(호흡/령)의 길이다(그 의미는 성경에 준한다). 물론 내가 이를 제시할 ..
의식화에 대하여 의식화라는 건 편의상 붙여둔 것으로 "~을 의식하다" 정도에서 차용한 것이다. 이 것의 목적은 오로지 단순한 한 가지로, '정신(마음)과 육신(몸)을 분별하기 위한 자기 정의' 정도로 말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에는 환기나 분산 혹은 집중 등의 어떠한 정신 작용이나 뭔가의 방법들이 곁들여질 수는 있겠지만, 그 것들은 일시적인 수단일 뿐 그 것 자체가 목적이 되지는 않는다. 의식화를 진행하기에 앞서 먼저 정신과 육신의 특성을 정의해둘 필요성이 있겠지만, 자세한 건 옛 사람들이나 현대 과학의 글들을 참고하면 될 것 같고, 나로서는 별다른 조예가 없으니 대체로 그 활동성을 근거로 삼아서, 다음과 같은 구도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족하였다. 영혼: 살다, 삶……. ⎡ 정신: 알다, 앎, 아는 가짐. ⎣ 육신:..
어떤 접미사 -ㅅ 습관을 대체할 만한 단어를 찾다가… ᄇᆡᄒᆞᆺ 「001」‘버릇’의 옛말. 추정 분석(?): ᄇᆡᄒᆞᆺ ← ᄇᆡ+ᄒᆞ+-ㅅ 1. ᄇᆡ ⇒ ᄇᆡ다(배다). 2. ᄒᆞ ⇒ ᄒᆞ다(하다). 3. ㅅ ⇒ 상태와 관련된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 그러니까, 뭔가 배어있는[습관화된] 상태인 어떤 조어 'ᄇᆡᄒᆞ다'에 어떤 접미사 -ㅅ 이 붙어서 명사화된 것 처럼 보인다. 이와 비슷한 것을 꼽자면, '거다'와 '것이다'의 관계를 들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대개 '거다'는 '것'의 구어 형태인 '거'에 속하는 것으로 말해지는 것 처럼 보이지만, 만약에 어떤 접미사 -ㅅ 이 있었다면, '거다'는 '것이다'의 구어 형태가 아니라 좀 더 원형에 가까운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거다. 즉, *ᄇᆡᄒᆞ다+-ㅅ → ᄇᆡᄒᆞᆺ. p..
한국어의 단모음 생성과 소실 보통 이렇게 말해지는 것 같다. 대체로 그럴싸하게 보이지만, 다음 부분은 의문이다. 왜, ㅐ/ɐj/에서 단모음으로 전설화 되었는데, /æ/가 아닌 /ɛ/인 걸까? 그냥 앞으로 당겨졌어야 하는 것 아닌가? /ɛ/ ← /ɐj/ (고설·전설화) ← 의문 /æ/ ← /ɐj/ (전설화) 이를 두고 곰곰히 생각해본 결과, 이 안은 '(ㅔ/e/, ㅐ/ɛ/) ← (ㅔ/əj/, ㅐ/ɐj/) 란 컨셉에 맞춰서 설정된 것이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게 되었다. 또 생각해볼 때, 한국인은 중저모음과 중고모음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않는다?). 그러니까 가령, /ɔ/와 /o/는 대개 /ㅗ/로 들리고, /ʌ/와 /ɤ/는 대체로 /ㅓ/로 들린다. 한 마디로 말해서, /ɛ/와 /e/는 처음 부터 모두 /ㅔ/로 들렸을 것인 즉, ㅐ/ɐ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