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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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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한… 경에서 말하기를, 내 넋이 하ᄂᆞ님만을 좇아 고요히 기다림이여 내 구원이 그분으로 부터 나오는도다,《시편 6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움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함으로 받을지어니 너희의 넋을 능히 구원할 바일새.《야고보서 1:21》 그러므로 말씀을 기우는 바, 고요그침[그리고 고요를 그침; 이미 그러나 아직 아닌] ├지식(앎) […→믿음] 인├절제(멈춤) - 심령이 가난한 이들은 복이 있나니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요《마태 5:5》 내├인내・인고 - 너희의 인내로 너희의 넋을 얻으리라《루가 21:19》 ⇵│├온유┬환기- 온유한 이들은 땅을 차지하고 풍성한 화평으로 크게 즐거워하리로다《시편 37:11》 ││따유├몰입: 주의집중(전념) 연││뜻약├관찰: 유지・유입(안팎) 단││한한└..
X하려 하지 않아도 X해진다. X하려 하지 않아도 X해진다. 보려 하지 않아도 보이고, 들으려 하지 않아도 들리고, 냄새 맡으려 하지 않아도 맡아지고, 맛보려 하지 않아도 맛보아지고 등등 하려 하지 않아도 되어지는 것들이 있다. 자연적으로 말하자면, 이 것들은 사물의 특성에 따라서 원래 부터 그러한 것들이다. 그래서 도가에서는 이러한 현상에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는 것이야 말로 자연스러운 것이며 좋은 것이라고 보았다. 반면, 좀 더 서쪽에서는 이러한 인식이 약간은 다르게 변주되었다. X를 바라지 않지만 X해진다. 보기를 바라지 않지만 보이고, 듣기를 바라지 않지만 들리고, 냄새 맡기를 바라지 않지만 맡아지고, 맛보기를 바라지 않지만 맡아지고 등등 바라지 않지만 되어지는 것들인 것이다. 고락으로 말하자면, 이 것들은 바라지 않지만 이루어..
자유의지에 대한 소고 내게 자유의지가 있는가? 여기에서 자유의지란 무언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의지다. 하지만 내가 그러한 자유의지를 지녔다고 해도 그 범위는 좁다. 나는 내 과거나 환경 등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 것들이 나를 일으키기에[내가 나일 수 있도록 만들기에] 나는 그 것들을 의존하고, 그 것들은 나를 제약한다. 만약 철저하게 수집된 데이터가 있고, 이를 계산해낼 수 있다면, 내 행동양식은 거진 다 드러날 것인 즉, 내 행동은 상황에 따라서 양식화된 형태로 나타날 뿐이고, 단지 선택이란 이름으로 포장되었을 가능성이 정말로 높다. 따라서 만약 자유의지가 있다면, 그 것은 거시적인 면이 아닌 미시적인 혹은 미세한 내적 작용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인간은 왜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선택했다고..
중세국어의 ㅖ 현대국어에서 ㅖ 는 /je/라고 발음 된다. 하지만 예전에는 단모음이 아니므로 /jʌj 또는, jɤj/로 발음되었으리라 보지만(일반적으로 말해지는 건 /jəj/, /ɤ/에 대한 건은 여기를 참고), 당대 역관들의 책을 보면 일본어의 え를 표기하기 위해서 /예/를 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렇게 바라보면 기분상인지는 몰라도, ㅖ/jʌj/는 뭔가 좀 지겹게 느껴진다. 그러니까 'ㅣ-ㅓ-ㅣ'가 빠르게 발음된다는 건데, ㅓ 앞뒤로 ㅣ가 배치되면서 뭔가 늘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실은 빠르게 발음되는 와중에 앞부분에서 전설로 단모음화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것은 아래와 같이, 마치 현대한국어에서 단모음이 탄생하는 방식 처럼 전설모음화된다는 것이다. ㅖ: /jʌj 또는, jɤj/ → /ɛj 또는, ej/..
수운의 신령과 기화 2020-01-01: 일부 바뀐 점은 여기에서 확인. 전에도 비슷한 내용의 글을 썼는데, 이번에는 약간 다른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수운은 다음과 같이 용어를 변용한 것 같다. 강신(降神) → 강령(降靈) 접신(接神) → 접령(接靈) 이를 중심으로 좀 더 생각을 진행하자면, 수운의 용어는 다음과 같은 짝을 가지게 되는 것 처럼 보인다. 수운의 용어 일반 단어 변형 낱자 연관 단어 신령(神靈) 신명(神明) 靈 ← 明 허령(虛靈) 기화(氣化) 기운(氣運) 化 ← 運 조화(造化, 無爲而化) 강령(降靈) 강신(降神) 靈 ← 明 허령(虛靈) 접령(接靈) 접신(接神) 靈 ← 明 허령(虛靈) 천령(天靈) 천신(天神) 靈 ← 神 허령(虛靈, 天主) 즉, 수운은 일반적인 단어의 뒷부분을 약간씩 변형하는 식으로 자신의 용어..
어떤 한자어들: 깨닫다, 기운 깨닫다 '깨닫다'라는 말이 있다. 명사로 쓴다면 깨달음이라고 한다. 깨닫다의 옛어형은 ᄭᆡᄃᆞᆮ다 이고, 그 변화의 과정을 구성한다면 다음과 같다. 깨닫다 < ᄭᆡᄃᆞᆮ다 ← ᄭᆡ-+ᄃᆞᆮ- ᄭᆡ다: (잠 따위를)깨다. ᄃᆞᆮ다: 달리다. 그렇다면 깨닫다 라는 건 '깨어 달리다'라는 뜻인가? 깨어 달린다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어떤 고차원적인 표현일까? 나 처럼 뛰어다녔던 사람이 만든 건가? 그런데 나는 실상을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니까 실은 저 것 자체는 별 뜻이 없으며, 어떤 한자어를 음차한 것일 뿐이다. 무엇을? 나는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해탈(解脫, मोक्ष, mokṣa) ├ 解: /kˠɛ/ 또는, /kai/ → ᄭᆡ/skɒj/(?) └ 脫: /duɑt̚/ 또는, /tʰuɑt̚/ → ᄃᆞᆮ/..
한국은 화나 있다(?) 한국은 화나 있다. 한국의 kibun을 상하게 한 벌이다! [아, 이제 저 말이 선택적 분노일 뿐이라는 건 전세계의 공식이지 않을까?] 저 "한국은 화나 있다"란 말을 달리 보면, 어떤 인간들에게 있어서, 이 나라는 만성적인 화병에 시달리고 있는 환국(患國)인 것을 알게 해준다. 화가 났으니, 거짓된 정보를 흘리고, 협정을 파기하고, 미래를 팔아서라도 화풀이를 해야 하겠다는 태도. 화가 나서 막 싸질러 재낀 걸 지들이 치운답시고 갑자기 애국자로 둔갑하고, 이를 지적하면 매국자로 둔갑시키고, 이게 정상적인 사고인가? 화가 나니까 다짜고짜 막 물어뜯는다면, 이게 짐승 새끼지 사람 새끼일까? 그리고 아직도 카드 같은 소리하며, 자신들이 운전자가 될 줄 아는 인간들이 있는데, 그거 이미 끝난지 오래고, 남은 건..
곡소리 연일, 한국이 일본을 ᄌힵ패고 있어서 곡소리(?)가 들리니 더욱더 가열차게 운동하며 승리의 날을 기다리자는 뉴스가 보도 된다. 물론 국내에서 들리는 곡소리에는 별다른 소식이 없다. 그들은 비국민 혹은 원죄를 지닌 존재니 국가를 위해서 말 없이 희생할 필요가 있으니까. "지금 책 잡히면 한국은 호구된다!!" 같은 소리로 계속 구워 삶으려지만, 지금까지 호구는 일본 아니었던가? 걔들도 더 이상 책 잡히면 끊임 없는 사죄와 배상으로 빨대 꼽히며 꾸준히 돈 빨릴 거라고 생각할 걸? 더군다나 한국은 이미 등신 아니었나? 북한·중국·러시아만 만나면 어딘가로 쭈그러들다가 야망이 있지만 빌미가 잡혀있는 일본만 만나면 갑자기 여포로 돌변하는 그런……. 그리고 이제는 그 빌미조차 저 멀리 날아가는 중이다. 누구는 한국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