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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일지/메모장

인과불응(因果不應)

성경에서는 처음에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말씀을 따르면 복을 받는다."

 

그러다가 다음에는 이렇게 말한다.

"의인과 악인의 삶에 차이가 없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또 다시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그 행한 바를 기억하고 갚아주실 것이다."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세상에서, 원인과 결과라는 구도는 상당히 직관적이다.

그래서 여기에 젖어있다면, 신앙이라는 것도 인과적으로 생각해서 답을 구하려 한다.

 

'착하게 살면(원인) 구원을 받는다(결과)'거나 '믿으면(원인) 구원을 받는다(결과)'.

 

그래서 이른 바 행위 구원이라는 것과 신앙 구원이라는 것은

원인의 내역만 다르지 결국은 같은 발상이며,

 

그렇기에 저 원인이라는 부분이 현실 세계에서 발생해야 한다면,

그 것은 결국 어떤 행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 위와 같은 점에서 비추어 볼 때, 성경을 따르자면 세상 속 인과는 불일치할 수 있으니,

내게 주어진 결과가 결코 어떤 확실한 원인에 의해서 제공되었다고 말할 수가 없다.

 

단적으로 말해서 지금 내 신앙이 정말 성령에 의한 것인가? 라는 물음에는

나는 결코 세상 안에서는 판별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것은 충분히 불응할 수 있으며, 다만 지레짐작으로 가늠해볼 수만 있는 것이다.

 

그리고 차후 내 삶에 따라서, 갚아지는 화복이 있을 것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

 


 

그렇기에 나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진정 순수한 믿음(?)이라면[비행위라면], 그 것은 인과에 놓여서는 안된다.

혹은, 인과라는 구도를 가져서는 안된다.'

 

먼저 인과를 벗어나기 위한 가장 단순한 안은 이렇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구원은 믿음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 분명하지만,
주님을 믿는다고 해서 구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믿음을 원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통로 즉 길(道)로 보겠다는 건데,

[아, 근데 이렇게 써두면 또 정상으로 가는 길은 어쩌고 같은 소리가 나올 것 같다;;]

 

이 길이란 건 어디까지나 인과를 벗어나기 위한 혹은 관통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그리고 인과적인 요소들은 다른 것들이 대신 해주도록 한다. 다음 처럼.

 

{하는, 아는, 믿는} 것

각각 이렇게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 행위: 경험적
  • 지식: 개념적
  • 믿음: 신기(神氣)적

 

신기는 최한기의 그 신기가 맞다. 그렇게 본다면,

 

행위로는 경험적인 사항을,

지식으로는 개념적인 면을,

믿음으로는 신기적으로서 이러한 지식과 행위가 통하게 하는 것을,

 

그려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믿음-행위-지식에 대한 것들이 모두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러한 바를 매우 매우 단순하게 본다면, 이렇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행한 바를(행위), 기억하고 갚아주실 것을(지식), 믿어라(신앙).

 

 

덧. 전도서의 "헛되다"는 공평하다로 바꿔도 나쁘지 않은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