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정운에서 맑은소리와 흐린소리의 구분을 위해서 병서를 활용한 것은 영리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병서를 활용한다면, 이상적인 형태 안에 현실적인 정보를 포함시킬 수가 있다.
다음과 같은 예문이 있다.
二ᅀᅵᆼ〮時씽 三삼十씹〮分분
이 것은 이렇게 읽힐 수가 있다.
ɲ̟͡ʑi.zi sɐm.zip̚.pun
[이하 성조는 고려치 않음.]
하지만, 당대나 지금이나 한국어는 맑은소리-흐린소리의 대립이 내세우는 언어가 아니다.
따라서 이상적으로 만들어진, 위와 같은 표기법과 독음은 현실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 있겠다.
그런데 정음을 사용하면서, '병서 → 흐린소리'라고 정의한다면, 이 문제로 부터 한 발 비켜가며, 다음과 같이 읽을 수도 있게 된다.
二ᅀᅵᆼ〮時씽 三삼十씹〮分분 (이상)
ᅀᅵᆼ〮 싱 삼 십〮 분 (현실)
ɲ̟͡ʑi[/(n)i].si sɐm.sip̚.pun
곧 로마자상으로는 철자가 상이하지만,
이러한 바를 각자병서를 사용함으로써, 일관성 있게 표기할 수가 있게 된다.
음… 합용병서의 경우도 유효하게 쓰일 수는 있겠으나(ㅱ, ㅭ 등),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는 글자에 따라서 달라진다. 가령,
道또ᇢ〯/dow/ → 동/to/. [첫소리의 'ㄷ', 끝소리의 'ㅁ'을 제거.]
一ᅙᅵᇙ〮/ʔit̚/ → 일/il/. [첫소리와 끝소리의 'ㆆ'을 모두 제거.]
덧.
二ᅀᅵᆼ〮時씽 三삼十씹〮分분
zi.s͈i sʰam.s͈ip̚.bun
이렇게 읽는다면, 세상 끔찍하다. 말하는 걸로 고통 받았을 것.
덧2.
한자음이 아닌 한국어에서의 병서는 구개음과 관계된 변이음을 처리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병서는 고정된 것이 아닌 활용을 위한 수단인 것이며,
이 관점에서라면 현대 한국어에서 된소리 표기에 병서를 쓰는 것은 정음의 법도(?)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시대와 언어를 불문하고 모조리 된소리로 접근하는 것이 문제인 것.
덧3.
추측하건데, 동국정운이 망한 것은 표기하기만 이상적이고,
누구도 이상적이게 읽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의미가 바래다가, 결국 존재의의가 없어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