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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일지/메모장

신적 간극

동학-천도교를 생각해 보다가 적는다.




그리스도교에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심연 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이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분리하는 작용을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상호간의 구분을 좀 더 분명하게 만들어주며, 경계가 무엇인지 가르쳐주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하나님과 사람이 분명하게 대립할 수록 대상이 분명해지고, 사람은 자신의 입지를 재설정하게 된다.


물론 항상 심연 만을 강조하는 건 아니다.


심연을 말하는 한 편, 형상과 에너지(혹은 내재적일 수 있는[만날 수 있는] 하나님)을 말함으로써 이 간극을 매우려고 하는데,

각각 예수와 성령이다. 특정 종파라면 성물을 활용하기도 한다.


비단 그리스도교만 이러한 것이 아니다. 대상이 분명한 만큼 이를 매우고자 하는 시도는 항상 있어왔다.


불교라면, 부처의 법과 함께 하는 수 많은 불상들.

이슬람교라면, 무함마드가 내려받은 법과 그 것이 지배하는 이슬람 사회가 이를 대신한다.


종교는 늘상 가르치기를, 신적 존재는 멀리 있으면서도, 그 힘은 가깝게 작용한다거나 그 존재가 매우 가까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동학-천도교의 경우는 어떨까?


대상이 분명한가? 모종의 형상을 강조하는가? 어떤 법과 일치화된 사회나 시스템을 철저하게 활용하는가?


흠… 솔직히 내가 느낄 때는 좀 흐리멍텅하게[애매하게] 느껴진다.


문외한이라서 그렇게 느낄 뿐, 내부적으로는 뭔가 다른 시도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혹 방법론적으로 부재하거나 허술한 건 아닌가 싶은 느낌이다.


하느님은 멀리 있지 않다는 가르침이 가져올 수 있는,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