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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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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선(善) — 구원확신과 행위공로 본문에서의 전제: 완전한 타락, 예선적 견인(預善的 또는, 예언적-), 유보적 칭의. 행위와 믿음은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 사람들은 행위는 행위, 믿음은 믿음이라 말하지만, 실은 믿음도 행하는 중에 있는 것이며, 그렇기에 그러한 바를 일러 '신앙행위'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자신은 신앙을 자랑하고 확신하는 것이지, 행위를 자랑하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실은 말장난에 가까운 것이다. 그렇기에 행위와 믿음을 가르는 건, 그저 말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기에, 추가로 '공로'라는 개념이 덧붙여질 필요가 있게 되지만, 그건 직접적인 설명이였기 보다는 반대를 위해 사용되던 개념이었을 뿐이다. 이제 내가 볼 때, 여기서의 핵심은 그리스도교의 구원에 대한 기조인 것이며, 그 것은 결국 구원을 위한 선(善)..
성찬과 성인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그 것은 성찬에 대한 관점과 성인공경의 관점은 대체로 그 궤를 같이한다는 생각. 그러니까 성찬의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뀐다고(성변화) 본다면, 인간도 하나님의 뜻에 걸맞는 형태로 변할 수 있다는 관점을 지닐 수 있지 않겠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은혜로 빵과 포도주가 능히 바뀌는데, 하물며 하나님께 충실한 인간을 상정한다면? 이 점에서 성인들의 어떤 (직접적인) 변화를 제시하고 그 믿음을 전승했다고 생각해볼 수 있겠다. 세상 속에서도 혹은, 천상에서도! 반면, 개혁교회 처럼 빵은 빵이고 포도주는 포도주일 뿐이라면, 마찬가지로 사람도 그냥 사람일 뿐, 단지 상징적으로 꾸며지는 것이다.[종교 개혁자들 중에 식중독으로 고생한 사람들이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