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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2)
율법/양심 그리고 복음 행위라는 측면으로 부터 계속해서 조명해나간다면, 더이상 믿음과 행위를, 단순 대비시키기는 어려워 질 것이다. 들어가기에 앞서 나는 예수와 바울의 율법관이 미묘하게 다르다고 보고 있다. 그렇지만 본문에서는 예수와 바울의 입장을 구분하지 않고 그냥 막 써 재꼈다. 그래서 간단하게 언급한다면; 바울: 율법이란, 죄를 드러내는 도구와 같다. 그래서 나쁜 것을 피할 수는 있지만, 좋은 것을 내놓지는 못한다. 때문에 의로움을 위해서는 율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요청이 필요해진다. 예수: 공관 복음과 요한 복음에서는 차이가 있어보인다. 공관복음: 바울과 달리 율법에서도 최소한의 좋은 것이 나올 수가 있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을 내놓는 것은 복음이다. 그렇게 생각했던 이유는, 좀 많이 감상적인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ㅂ/ㅅ 합용병서 — 사이시옷 접근 방법에 있어서 수정됨. ㅂ 합용병서 어떤 ㅂ 합용병서는 사이시옷을 표기한 것 처럼 보인다. 가령 좁쌀의 예를 들어 본다면, 좁쌀 은 '조ᄡᆞᆯ'에서 왔는데, 사전에서는 이를 "좋+ᄡᆞᆯ"의 합성어로 표기해놓고 있지만, ㅂ 이 사이시옷이라면 이 것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좁쌀 < 좁ᄉᆞᆯ(조ᄡᆞᆯ) ← 좋+ㅂ+ᄉᆞᆯ. [ 즉, 米(rice)의 오래된 형태는 /ᄉᆞᆯ/일 것이다. ] 이 표기법이 가로쓰기에서는 잘 티가 나지 않지만, 세로쓰기로 본다면 마치 잘 결합된 블럭 처럼 보인다('마립간-마리ᄇ간-마리ᄞᅡᆫ'도 추가). [조ᄡᆞᆯ 은 내부적인 탈네모꼴(?) 표기로써 나타난 것이 아닐까?] ᄡᆞᆯ 의 사이시옷 ㅂ이 어떤 식으로 주어졌는 지는 모르겠지만, 기본형으로 쓰였던 ㅅ과 는 구분되는 형태였기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