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3) 썸네일형 리스트형 단군(檀君) 단상 — 어원 추적 [20180321]좀 더 그럴싸하게 만들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조건을 더했다. 檀君과 王儉은 상호 독립적이며, 만들어진 시기가 다르다(仙人王儉, 檀君王儉). 단군이란 이름은 왕검 보다 후대에 만들어졌다(王儉 → 檀君×王儉). 단군의 명명자는 왕검이란 명칭을 임금 이란 뜻으로 파악하고 이름을 붙였는데, 이는 단군신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단군과 환웅의 관계에 따른 것이다(단군왕검의 王儉과 환웅천왕의 天王을 같은 맥락으로 이해). 단군왕검(檀君王儉)은 檀.君王儉이라고 할만 하다. 君王儉 의 君은 훈, 王儉은 임금의 이두식 표기로 보는 것이다. 아래와 같이 쓸 수 있겠다. 檀○君=王儉 이렇게 본다면, 王儉이라는 단어는 君을 설명하기 위한 주석과 다를 바 없으므로 생략이 가능하고, 단순히 檀君이라 불려도 충분.. 황당고기 성립과정.pdf http://cafe.daum.net/alhc/51qB/682 돌아다니다가 보았다. 과연. … 이제는 교과서에도 좀 실려야 할 것 같다. '가짜 역사와 그 책이란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란 명목으로 말이지. ※ '환단고기 내용의 변화 완.pdf'란 파일은 카페에서. 그건 그렇고 최근은 개천절을 보내면서 좀 그렇더라. 내 조상도 그렇고(초창기 기원 까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그렇고,나라는 종자는 삼한이나 진(?)의 후손에 가까울 텐데,그렇다면 고조선의 단군이란 존재는 그닥 관련이 없는 거 아닌가? 고려-조선 유학자들이 단군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그들의 사대성 뿐만 아니라실제로도 먼 옛날의 북방 왕조와는 딱히 접점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지 싶다. 단군 신화에 대한 도설적 접근 단군 신화를 생각하며. 1안: 단군 신화 속의 역사성이란 거의 없다고 생각되는데, 신화의 마지막쯤에 있는 "단군이 있었고, 평양에 도읍을 정하여 조선이라 하였다"만 역사적인 기록이 아닐런지? 2015-11-08제목을 변경하고, 내용을 수정.그리고 좀 더 보강하였지만, 제대로 되었다는 보장은 못함.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