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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귀일체 — 자기→타자화

자기->타자화란, 나는 그들 가운데 있는 것이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복음25:35-40》


이 구절에 가장 적합한 말을 찾자면, 나는 이 단어를 꼽겠다.

동귀일체(同歸一體)

[이 말은 수운이 말하고 천도교에서 전하는 단어이나, 그들이 사용하는 바와 내가 생각하는 것은 다르다. 즉, 동음이의어인 셈. 주창자의 뜻과는 다르나 아직까지 이 단어만큼 내가 지닌 의미를 대변해주는 건 찾지 못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나 또한, 그들로서 함께, 같이 돌아간다"는 것으로, 자기도 그들 안에 섞여서 타자화 되는 것이다. 그러나 타자화라하여, 자신의 개체성이 포기되는 건 아니다. 그렇게 되면 타자화된 의미가 없다.

나는 너희 가운데에 나의 거처를 정하고, 너희를 혐오하지 않겠다. / 나는 너희와 함께 살아가면서 너희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으로 남지 않게 하려고,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주 너희 하느님이다. 나는 너희 멍에를 부수어, 너희가 얼굴을 들고 걸어갈 수 있게 하였다.’《레위기26:11-13》


인용한 레위기의 마지막 구절(26:13)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요한은 이렇게 전하였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요한복음1:14》


성육신이 이러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