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고난이나 고통을 만나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타개책을 찾기 마련이다.
세상에 통용되는 대표적인 타개책으로는 돈, 사람(인망), 지식, 지위(권력), 기술 등이 말해지고 있는데,
이를 좀 더 추상화시킨다면,
사람들이 찾아 헤매는 것이란 겉으로 보이는 돈이나 지위 따위가 아니라
결국에는 당면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 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고민을 해결하는 힘, 고통을 벗어나는 힘, 욕구에 대한 충족이나 해소,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힘 등…….
이렇게 현실 속 문제를 타개할 수 있는 힘이란 건,
말 그대로 닫혀있던 현실을 열어제끼고 과거를 털어내며 미래로 도약하는 파워 즉, 강력한[지극한] 힘이다.
[※ 열어제끼다의 표준은 열어젖히다 라고 한다.]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힘을 더 추가하자면, 그 곳에 '하느님'을 넣어 볼 수 있을 것이다.
강자의 힘이 돈이나 권력과 가깝다면, 저 하느님은 비천한 약자와 가깝다.
현실적으로 쥐고 흔들 수 없으니 알 듯 모를 듯한 것으로써 부여잡고 의지하는 힘인 것이다.
다만 이 점에서 하느님은 돈・권력과 근본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어지며,
오히려 저 강력한 힘의 한 요소로서 귀속되고 처리된다.
즉 그 것은 알 듯 모를 듯 하지만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으면서,
강자의 힘을 소유하지 못한 '나' 대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전가의 보도!
이 것이 무일푼의무력한 약자가 구하는 힘이다.
[왜! 저 힘은 세상의 부조리를 해결하지 않고,
대체 왜! 저 힘은 그런 부조리에 분노하는 나를 돕지 않는 걸까?
이 것도 약자이기 때문에 할 법한 생각이지만, 머 이 건 곁다리고.]
그런데 이 '현실을 열어제끼는 힘'이 인간 안에서 한 번의 우상화 작업을 거치면
그 것은 다시금 하나의 하느님으로서 등장하게 되는데,
이 하느님은 숭배받을 때 또는, 오로지 숭배받기 위해서만 나타나기 때문에
이름하자면 그 것은 순수한 숭배의 대상 즉, '주님'이 된다.
과거 현실에서는 위와 같이 문제 해결이 가능한 힘을 독점하고,
힘을 소유함으로서 숭배받는 주님을 베껴낸 인물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황제'다.
황제는 앞서 말한, 돈-사람-지식-지위-기술 등을 가지고 있거나
그 것들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을 부릴 수 있었으니 살아있는 하느님으로 숭배되었다.
황제는 이 글의 제목인 '위에-선-사람'의 구현체(?)중 하나라고 할 수 있으며,
엄밀하게 말하자면, 황제는 위에선자 중에서 '위에-올라-선-자'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구현체는 정치력과 다를 바 없으므로 가늠할 수 있는 조건이 무너지면 곧 해체된다는 점인 즉,
힘의 구현체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무력하게 무너진다는 점에서 위선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형태의 구현체로는 '위에-매달려-선-자'이 있다.
이는 전자와 달리 힘을 거두거나 부리는 것으로서 위에선사람이 된 것이 아니다.
기록된 바에 따르면 올라간 것이 아니라 내려간 것으로 부터 올려졌다고 말한다.
음…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맞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후자는 힘을 쓰는 것이 아니라, 힘이 되어주는 것으로서 힘이 된 것이다.
덧.
그리스도교의 구원론을 여기에 덧붙여서 말하자면,
십자가 위에서 돈-사람-지식-지위-기술 등은 모두 버려졌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힘이 지니는 현실 속 유용함에도 불구하고,
힘을 소유하는 것과 인간의 구원은 철저하게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다.
덧2.
강자는 그 보다 더욱 강한자를 만나면 상대적으로 약자가 되고,
약자는 그 보다 더욱 약한자를 만나면 상대적으로 강자가 된다.
[또한 상황에 따라서는 그 역학 관계가 뒤집어 지기도 한다.]
강자는 항상 강자고, 약자는 항상 약자인가? 그런 인간이 있기는 하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