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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일지/메모장

자유의지에 대한 소고

내게 자유의지가 있는가? 여기에서 자유의지란 무언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의지다.

 

하지만 내가 그러한 자유의지를 지녔다고 해도 그 범위는 좁다. 나는 내 과거나 환경 등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 것들이 나를 일으키기에[내가 나일 수 있도록 만들기에] 나는 그 것들을 의존하고, 그 것들은 나를 제약한다. 만약 철저하게 수집된 데이터가 있고, 이를 계산해낼 수 있다면, 내 행동양식은 거진 다 드러날 것인 즉, 내 행동은 상황에 따라서 양식화된 형태로 나타날 뿐이고, 단지 선택이란 이름으로 포장되었을 가능성이 정말로 높다.

 

따라서 만약 자유의지가 있다면, 그 것은 거시적인 면이 아닌 미시적인 혹은 미세한 내적 작용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인간은 왜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선택했다고 여길까?'라고 생각해 볼 때, 실제로 (연관성은 있지만 확실치는 않은) 어떤 미세한 선택이 있어왔다고 가정한다면, 그 것은 기존의 행동양식을 벗어난[예측이 불가능한] 우연적인 산물이 되어야만 한다.

 

그러니까 좀 이상하겠지만, 자유의지는 내 맘대로 자유자재한 선택이기 보다는, 우연하게 주어지는 기회이자 선택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 것은 나를 이루고 있는 것들로 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나머지 것들로 부터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것이 되며, 내가 아는 것들로 부터가 아닌 오히려 모르는 것들로 부터, 확실한 것이 아닌 불확실한 것으로 부터 주어진다고 할 수가 있겠다.

 

...

 

약간 다른 주제로. 그리스도교의 선을 향하는 자유의지도 우연과 관계될 수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본문을 재사용한다면 거시적으로는 전적 타락만이 있을 뿐이지만, 미시적으로는 50:50이다. 왜, 개들도 주인이 먹다가 흘린 치킨 조각을 주워먹을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하자면 이 말은, 성령의 도움으로 미약하지만 선의지를 갖는다는 말은 아니지만, 피조물이라면 무엇이나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혹 선을 행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나는 성화라는 개념이 오독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

 

 

덧.

우연하게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그 것이 자기 안의 지향하는 바와 완전히 동떨어지게 정해진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 점에 있어서도 자유의지는 자유자재한 선택이 아닌 자유로운 기회와 선택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