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닫다
'깨닫다'라는 말이 있다. 명사로 쓴다면 깨달음이라고 한다.
깨닫다의 옛어형은 ᄭᆡᄃᆞᆮ다 이고, 그 변화의 과정을 구성한다면 다음과 같다.
깨닫다 < ᄭᆡᄃᆞᆮ다 ← ᄭᆡ-+ᄃᆞᆮ-
- ᄭᆡ다: (잠 따위를)깨다.
- ᄃᆞᆮ다: 달리다.
그렇다면 깨닫다 라는 건 '깨어 달리다'라는 뜻인가? 깨어 달린다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어떤 고차원적인 표현일까? 나 처럼 뛰어다녔던 사람이 만든 건가?
그런데 나는 실상을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니까 실은 저 것 자체는 별 뜻이 없으며, 어떤 한자어를 음차한 것일 뿐이다. 무엇을? 나는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해탈(解脫, मोक्ष, mokṣa)
├ 解: /kˠɛ/ 또는, /kai/ → ᄭᆡ/skɒj/(?)
└ 脫: /duɑt̚/ 또는, /tʰuɑt̚/ → ᄃᆞᆮ/dɒt̚/(?)
[보기의 재구음들은 취사선택함.]
즉, 중고한음 /kˠɛ.duɑt̚/을 음차하되 부수적으로 도움이될 법한 깨다란 말을 중심으로 삼고 여기에 닫다란 말을 덧붙인 것이다. 그러니까 깨닫다 라는 말의 핵심은 깨다라는 것과는 거리가 먼 벗어나다란 뜻의 해탈(하다) 이되 부수적으로 깨다란 단어를 씀으로써 보조하고 있는 것.
그리고 이 부분이 원래 포스팅 목적인데, 형태적으로 볼 때 저 것은 /kai.duɑt̚/ 비슷한 소리를 음차했을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우선 /kˠɛ.duɑt̚/이 아닌 이유를 보자면, 우연찮게도 중고한음 解/kˠɛ/는 현대한국음 깨/k͈ɛ/와 여러모로 유사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마치 'ㆎ/ɛ/ ← ㆎ/ʌj/'를 떠올리게 하지만, 다음과 같은 조건을 주어서 부정할 수 있겠다.
- 이 조어법은 이두 처럼 어두에는 뜻(비슷한 것), 어중에는 소리를 단순 음차하였다.
- 후속하는 脫/duɑt̚/을 옮긴 것도 ㆍ를 쓴 ᄃᆞᆮ-/dɒt̚/이었다.
- 과거 한국어에서는 모음 -ㅣ가 이중모음으로 말해졌다.
위와 같은 조건으로서 실제 저 말을 만들어 옮긴 사람은, 둘다 저모음이라는 관점을 생각하고 만들었으리라 본다. 즉 다음과 같을 것.
해탈(解脫)/kai.duɑt̚/ → ᄭᆡᄃᆞᆮ-/skɑj.dɑt̚/
이 주장은, 본문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나는 ㆍ를 ㆍ/ɒ/로 써놨지만, 실제로 좀 더 오래된 형태 내지 어떤 지역적인 특성을 따른다면, ㆍ는 ㆍ/ɑ/일지도 모른다는 것으로 /ɒ/는 후대 또는 남부지방에 있어서 원순모음화로 변화한 소릿값일 것 같다는 것이다.
기운
기운의 옛형태는 긔운 이다. 예전에 기운을 두고서 한자어 氣運 에서 왔다니 아니니 하는 말이 있다가 한자어가 아니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진 걸로 알지만(표국대 반영), 이 역시 한자어일 것이다. 다음과 같다.
기운(氣運)
├ 氣: /kʰɨi/ 또는 /kʰiəi/ → 긔/kəj/(?)
└ 運: /ɦɨun/ 또는 /ɣiuən/ → 운/un/
[보기의 재구음들은 취사선택함.]
여기도 ㆍ와 비슷한 문제가 나오는데, ㅡ의 소릿값 역시도 재구된 한음들을 따져본다면 대개 ㅡ/ɨ/나 ㅡ/ə/ 사이의 어딘가에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