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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일지/메모장

평범하고 평범한 그래서 거룩한.

사람들에게서는 그 자신의 종교성이 드러날 때,

성스럽거나 비일상적이거나 혹은, 다른 것과 구분되는 어떤 상징 같은 것들을 찾아나선다.

 

하지만 스스로를 돌아본다면,

되려 평범하기 때문에 더욱 거룩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 이 것은 '일상적인 것이 거룩한 것이다'라는 걸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평범하기 때문에 그래서 거룩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성만찬

지금의 교회의 성만찬은 전례 즉, 종교 예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구교나 신교 모두 마찮가지다.

개신교의 경우 간소화되었다지만 역시 교회라는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시간을 정해 행해지는 예배 겸 예식이다.

 

하지만, 사실 주님의 만찬은 회당에서 드려진 것이 아니었다.

그냥 식사를 같이 한 것 뿐이다. 물론 시기적으로 큰 사건을 앞둔 것이지만.


오늘도 먹고 마셨다. 사람은 빵으로만 살 수는 없지만, 일용할 양식은 먹어야지.

사실 빵과 포도주는 별로 와닿지 않는다. 그 것들은 내 삶과는 다소 떨어져 있으니까.

 

빵 대신 밥을, 포도주 대신 국을 마시며먹으며

오늘도 주님의 몸과 피로써 살아가고 있었음을 상기한다.

 

나는 생명의 밥을 먹은 것이다.

주께서 가르치신 말씀을 기억하고, 그와 함께 그 말씀을 먹었다.

 

특별한 만찬은 어쩌다 한 번씩이지만,

평범한 만찬은 매일 매일, 적절하다면 삼시세끼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할 수 있다.

 

거룩한 것과 비천한 것

거룩한 것의 반대는 비천한 것인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거룩한 것의 반대는 별로 거룩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거룩한 것과 비천한 것을 대비하는 것은 이원성에 그렇다는 것일 뿐,

거룩한 것과 맞대어 있는 것은 거룩하지 않은 것 즉, 평범한 것이라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성육신을 두고서, '하나님의 자기비하'라고 말하는 것은

역시 이원성일 때 그렇다는 것이고, 다르게 본다면, 자기평범에 가까울 수도 있다.

 

그렇게 관점을 좀 바꿔보면,

낮은 곳에 내려와서 고통받고 소외된 자들 위주로 주목한다는 구세주가 아니라

좀 더 평범한, 그런 장소와 사람 사이에 머무는, 하나님을 보고 있게 되는 것이다.

 

식사로 인한 질병

다시 성만찬으로 돌아가서, 간혹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주님의 음식을 먹고 마셨는데, 그게 잘 못되서 병에 걸렸다면, 문제 아닌가?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그의 육체 역시 고통받고 피흘리고 쇠약해졌다.

그의 몸을 먹고 초인은 아니더라도 병은 걸리지 말면 좋겠지만,

별로 특별하지 않다면, 병에 걸리면 걸릴 수도 있는 거겠지.ㅎㅎ

 

물론 주께서 병을 피하도록 인도해주시면 개인적으로는 베스트겠지만.

 

※ 썩은 음식이라면 뱉는다. 그걸 왜 먹어?

예수님도 곰팡이 핀 부분이 있다면 바로 뜯어내고 드셨을 것이다.

 

비일상성(곁다리)

나는 처음에 이렇게 말했다.

 

성스럽거나 비일상적이거나 혹은, 다른 것과 구분되는 어떤 상징 같은 것들을 찾아나선다.

 

가끔 이런 말이 들려온다.

모종교가 널리 회자되는데 반해서, 실제 그 교인들을 별로 늘지 않았다고.

 

아무래도 그 건. 그 종교에 대한 관심이라기 보다는

그 것이 주는 비일상에 더 큰 관심이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악평 보다는 났겠지만, 썩 좋은 현상은 아니다.

그렇다고 친목회가 좋다는 것도 아니지만.

 

같이보기

 

평범하기 때문에 그래서 거룩해지는.

평범하고 평범한 그래서 거룩한.에 이어서 쓴다. 언젠가 부터 어떤 교우들은 "예수 그리스도는 소외 받고, 억압 받고, 고통에 겨운 사람들을 위해서 찾아왔다"는 식으로 가르키고 있던데, 그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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