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이 있으면 볼 수가 있고, 청각이 있으면 들을 수가 있다.
같은 방식으로 자각이 있기 때문에 나는 나를 알 수가 있다.
덧붙여서 말하자면,
시각적 대상은 눈을 의지하여 볼 수가 있는 것이고,
청각적 대상은 귀를 의지하여 들을 수가 있는 것이며,
자각적 대상은 정신을 의지하여 나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귀를 열었다가 닫으면 소리가 들렸다 사라지는 것 처럼,
생각을[정신 작용을] 했다가 멈추면 내가 있다가 사라진다.
눈을 감았다고 보이던 사물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귀를 닫았다고 들리던 소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닌 것 처럼,
생각을 멈춘다고 있었던 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시각기로 보기 전에 먼저 대상이 있고,
청각기로 듣기 전에 먼저 소리가 있는 것 처럼,
자각기로 알기 전에 먼저 내가 있는 것이다.
보여지고 들려지는 사물이란 건 비록 있다가 없어지기 마련이나,
그 특성이라는 건 불변하고 항구적으로, 세계 안에서 끊임 없이 재생산·재가공된다는 점에서
나의 특성을 담보하는 것 역시도, 불변하고 항구인 채로 세계 안에서 머무른다.
그렇기에,
돌은 부서져도 여전히 돌이었다고 하는 것 처럼, 내가 죽어도 그 것은 여전히 나로 남고 또, 말해진다.
상황이 이러한 즉,
자각이 있는 즉, 누구나 나-자신 을 알고 있는 것이며, 그의 영혼은 이미 깨닫고 있는 것이다.
…라고 옛 사람들은 생각했던 것 같지만, 크게 동의하지는 않는다.
덧. 자아니 진아니 하는 것들은, 실상 단일 개체로 부터 유도되는 것 만으론 성립할 수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