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말, 사도의 말
먼저 우리가 예수의 말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사실 예수만의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 것은 예수의 말을 전하는 사도들과 그 공동체의 말이다. 말씀이 적혀있는 성경 역시 마찮가지다. 성경은 이를 전하는 그리스도교회가 신앙에 따라서 정립한 것이고 또 그 신앙에 기초하여 성립된 경전이다.
결과적으로 예수의 말은 이미 사도들의 말과 신앙에 녹아서, 교회를 통하여, 하나 처럼 전해지고 있는 것이니, 사도를 떠난 예수와 교회를 떠난 성경은 그 의미가 퇴색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죄 없는 인간
인간은 본디 무죄하다. 아담이 그랬고, 예수 역시 그랬다. 전통적으로 원죄가 있어서 사람이 죽는다고 말하지만, 완전한 사람이자 하나님이며, 무죄한 어린 양인 예수 역시 죽을 수 있는 것을 보면, 반드시 원죄가 (주어져)있어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 아니라, 원죄의 결과로써 사람이 죽게되었다고 보는 편이 더 아귀에 맞는다.
또, 인간을 죄로 기울게 하는 것을 두고서 원죄/죄성을 말하지만, 그러한 속성을 따로 둘 필요 없이, 나약한[부정한] 육신(죽게되는/썩게되는 육체)로
부터 그러한 경향이 주어진다고 보는 편이 해석이 좀 더 단순해지며, 이러한 육신을 어떻게 처분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요청이 자연스럽게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다만 이렇게 전개해나갈 경우 영육이원론에 취약해진다는 문제가 있겠다.
아담이란 존재를 최초의 사람으로 위치시켰을 때, 그의 후손들이 죽게되는 건 아담이 사람으로서 죽게되는 특성(혹은 운명)을 갖추게 되었기 때문에, 그 자손들 역시 죽는다는 것으로도 설명이 가능하고, 이 편이 부정한 육신을 설명하기에도 좀 더 낫다.
[하지만 아담을 모른다고 하여도, '사람의 고통'이라는 사실이 주어진다면 그리스도교는 충분히 성립가능하다.]
위로 부터의 은혜
죄의 유무을 떠나서 그리스도교는 보편선이 개체마다 내장되어 있다고 보지 않는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숨을 불어넣고, 사람이 생명[생령]이 되었다고 해서 여기에 신성이 있다거나 어떤 선한 것이 들어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 곳에는 무지와 함께 인간의 삶이 있었을 뿐이다.
인간은 선하지만 상대적으로 덜 선하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선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하나님만이 지선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을 전하는 사도들은, 지선의 존재인 하나님의 사랑이, 하늘로 부터·위로 부터·바깥으로 부터 오는 것이며, 땅에서·아래에서·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말한다. 그래서 하나님[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선한 것이며, 그 삶을 선하신 분이 보고 기뻐하는 것에[인정하는 것에] 의로움이 숨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생명을 주고 먹이고 또 살리는 가운데 그 은혜를 배풀어 주신다는 점에서 그의 자비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바, 예수를 신뢰하여 그가 전하는 이 자비와 사랑 또한 믿는다면, 이 것이 인간이 획득하는 보편선(앎)이 된다.
하지만 설령 하나님을 모르더라도 그가 삶과 죽음을, 배부름과 배고품을, 작업과 휴식을, 보람과 노고를, 건강과 아픔들을 안다면 그 역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자비로울 수 있고 또 사랑할 수 있으니, 이는 무죄한 인간의 선함이 궁극적으로는 주님의 자비 속에 있기 때문이며, 마땅히 좋고 나쁜 것이 무엇인지를 인간의 삶 가운데서 알게 되기 때문이다.
갈피
이와 같이 그리스도교의 앎에는 별다른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좋고 나쁨을 분간하는 일이란 동물들도 능히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사람은 동물과 달리 좋은 걸 보태고 나쁜 걸 덜어내는 일이 보다 사회·관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며, 그리스도교인은 비신자와 달리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써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차이가 있게 되는 것일 뿐이다.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긴 것을 뽑을 때가 있다.
죽일 때가 있고 고칠 때가 있으며 부술 때가 있고 지을 때가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기뻐 뛸 때가 있다.
돌을 던질 때가 있고 돌을 모을 때가 있으며 껴안을 때가 있고 떨어질 때가 있다.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간직할 때가 있고 던져 버릴 때가 있다.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침묵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의 때가 있고 평화의 때가 있다.
그러니 일하는 사람에게 그 애쓴 보람이 무엇이겠는가?
나는 인간의 아들들이 고생하도록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일을 보았다.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도록 만드셨다. 또한 그들 마음속에 시간 의식도 심어 주셨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시작에서 종말까지 하시는 일을 인간은 깨닫지 못한다.
인간에게는 살아 있는 동안 즐기며 행복을 마련하는 것밖에는 좋은 것이 없음을 나는 알았다.
모든 인간이 자기의 온갖 노고로 먹고 마시며 행복을 누리는 것 그것이 하느님의 선물이다.
나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이 영원히 지속됨을 알았다. 거기에 더 보탤 것도 없고 거기에서 더 뺄 것도 없다. 하느님께서 그렇게 하시니 그분을 경외할 수밖에.
있는 것은 이미 있었고 있을 것도 이미 있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사라진 것을 찾아내신다.《전도서 3:1-15》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