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료수집·소고/순례 때

구약의 하나님, 선하신 분.

한 때는 구약의 하나님이 싫었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내가 배운 그--구약의-- 하나님이란 징벌자이자 지역신 혹은 민족신에 가까운 면모를 주로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스스로의 문제도 있었는데, 위와 같은 편견을 가지니 자연스럽게 최신의(?) 신약 보다 후져보이는 구약을 별로 읽어보려 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개신교에선 징벌자로써의 하나님을 선보일 때마다 구약을 들이대며 훈계를 시도한다.

"너희들 말 안들으면, (이렇게 무서운)하나님이 어흥한다!!"

훈계의 방향이라도 좋으면 다행이건만, 자신들의 교의와 권위를 옹호하고 강화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들먹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답이 없어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이권과 이익을 위해서 빌어갔던 하나님을 벗어나기 까지 참 오래걸린 듯 싶다.


그렇게 단견을 버리고 구약을 펼쳐보았을 때, 구약의 율법들과 징벌들 그리고 후대에 등장하는 신약 속 지옥 까지... 이 모든 것들이 그의 의로움을 말하고 있음을 비로소 알게되었다.



율법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구약의 하나님을 중시하는 이들은 율법과 각종 규율들이 매우 중요한 듯 말하지만, 알다시피 그가 모세를 통해 제시하는 규범들은 처음엔 없던 것들이다.


사람(아담)은 그가 망하기 전까지 매우 자유롭게 살았고, 하나님 역시 이를 보장하였음을 알아야한다. 이게 원초적인--본연의-- 인간 모습이고,이것이 인간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이다.


본디 율법이란 망한 세상 속에서 망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의를 추앙하는 자들을 구별짓기 위해서 제시된 것이지, 그들만의 리그를 이루며 특권의식을 누리거나, 이를 바탕으로 타인을 죄인으로 지목하고 파멸시키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다.


사실상 율법은 그들이 악해서 주어진 것(히브리인들은 주위의 타민족들 보다는 덜 나쁜 놈들이라서 선택받았다)이니 이를 자랑할 필요가 더더욱 없겠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란, 율법의 변질과 그 남용을 제거하고서, 의로움의 화신인 자신을 따라 본연의 모습으로서 아버지의 선을 추종하자는 것이니, 현수막 처럼 걸려진 예수의 이름을 꺼내들며, 이름만 부르짖으면 천국행이란 것과는 거리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애초에 고대인의 이름이란, 이름하여진 실재의 파워--힘--를 수반하는 것이지만...)



혹자는 사랑의 하나님과 징벌자로서의 하나님이 같을 수 없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은 선하며, 사람을 사랑한다. 때문에 악을 미워하고, 의를 세우고자 한다.


과거의 그 때, 즉 인류애가 발붙이지 못하고, 인류가 진정 악하기를 그치지 않았던 때에, 구약의 하나님이 의를 세우고자 마련한 장치들을 현대에 다시 쓰기는 어려우나 여전히 악을 생산코자하는 이들에게는 유효할 것이니, 바울이 주장하는 바가 여기에 잠시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