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 블로그도 오래 썼지…… 이번엔 어디로 가지?
아무튼 문득, 퇴계 생각이 났다.
다산은 퇴계의 리기론을 보며, 도심과 인욕이라 하였고, 율곡의 리기론과는 관점이 다르다는 말을 하였다.
그래서 나도 생각했다, 그렇다면 퇴계의 리기론에 새 이름 혹은, 별칭을 붙여주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고.
그렇게 염두에 두고서 이름을 붙여본다면, 퇴계의 리/성를 공리사회성(公理社會性, 이하 공성)이라 하고, 다시 그의 기/심을 사기개인심(私氣個人心, 이하 사심)이라고 부른다면 의미가 더욱 정확해질 듯 하다(내용이 다르면, 말을 바꾸라고).
[※ 반면 율곡의 리기론은 각각 통리보편성(通理普遍性 즉, 통성)와 국기개별심(局氣個別心 즉, 국심)으로 말해질 수 있다. 사회와 보편이 다르고, 개인과 개별이 다르다. 저 둘은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다만 철학적 구조·구도만 같다.]
예전에 퇴계의 성과 심을 초자와 자아에 비교한 책이 있었다. 나름대로 적절한 접근이었다고 생각하는데, 두 개념 모두 사회를 떼어 놓고서는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공성은 본디(일정부분) 심성적 원리로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다르다.
퇴계는 심학을 중시하면서도, 비슷하게 심학을 내세우던 양명학은 매우 미워(?)하였는데, 위와 같은 관점을 가진다면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퇴계 입장에서 양명이란, 공적·사회적인 영역을 사적·개인적인 영역이라고 주장하는 격이니, 퇴계가 단순히 주자/유교빠여서 미워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좀 더 말하자면, 양명은 대나무를 두고서 거경궁리하다가 병을 얻었다는데, 이는 그 방향성이 완전히 잘 못된 것이다. 그가 주자(/퇴계)의 성리를 알고자 했다면, 대나무가 아니라 마땅히 그의 이웃을 살펴보고서 그 사람을 통하여 거경궁리했어야만 했다(이는 양명의 성향과도 관계 있었을 것이다).
퇴계는 사단칠정론에서 리와 기가 서로 발한다고 말하였는데, 보통 도심과 인심으로 설명되지만, 좀 더 성리와 심기로서 생각해본다며, 결국 공리사회성이 발현한다는 건 인간 내면의 사회성(즉 사단)이 주변 인간과 사회 안에서 끊임 없이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또한 내부의 사회성은 이러한 외부의 사회 구조를 모방하지 않고서는 성립되지 않는바, 이 것이 곧 성즉리로 말해질 수가 있는 것이니, 이 점에서 성리학은 불교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다른 이야기를 하는 체계가 된다.
- 본연의 성: 요순 사회
- 기질의 성: 현실 사회
그러니 퇴계가 보기에는, 양명이란 작자는 지가 공부의 방향을 잘 못 잡았으면서, 잘 안된다고 징징거리며 주희를 비난하는, 유학자의 탈을 쓴 불자로 비춰지지 않았는가 싶다.